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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바다 하면 갯벌부터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대부도 방아머리항에서 배를 타고 80분, 승봉도에 발을 딛는 순간 그 편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만조 때도 갯벌이 드러나지 않는 에메랄드빛 해변,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데크길, 그리고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 조용한 섬 마을. 수도권에서 1시간 반이면 닿는 거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배편 예매,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주말 아침 일찍 대부도 방아머리항에 도착했습니다. 항구 입구 오른쪽에 주차장이 있는데, 사전 결제 5,000원으로 3일치 주차가 가능합니다. 처음엔 그냥 현장에서 표를 사면 되겠지 싶었는데, 선착장에 도착해 보니 승봉도행 줄이 이미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주말이나 성수기엔 반드시 대부해운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매를 해야 한다는 걸 그날 실감했습니다.
방아머리항에서는 덕적도, 대이작도, 자월도, 승봉도 등 여러 노선이 운항됩니다. 승봉도행은 차도선(車渡船)인 대부아일랜드호가 운항하는데, 차도선이란 여객과 차량을 함께 실을 수 있는 여객선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아래층은 차, 위층은 사람이 타는 구조입니다. 배가 제법 커서 갑판에 올라서면 서해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옵니다.
제가 직접 타 보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실내외 어디에도 의자가 단 한 개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여객선에는 좌석이 기본으로 갖춰져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배는 돗자리나 개인 의자를 챙겨오지 않으면 80분 내내 서서 가거나 바닥에 앉아야 합니다. 미리 알고 가시면 훨씬 편합니다.
배가 출발하면 갈매기들이 선착장 부근에서부터 따라붙기 시작합니다. 새우깡을 내밀면 공중에서 낚아채 가는데,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80분이 전혀 길지 않습니다. 출발 50분쯤 지나면 옅은 해무 위로 이작도와 승봉도 윤곽이 드러납니다. 승봉도는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한 작은 섬으로, 하늘로 비상하는 봉황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면적은 여의도보다 조금 작지만, 도보로 한 바퀴 돌면 섬이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인천항에서도 승봉도행 여객선이 운항됩니다 인천발 노선은 운항 시간이 더 길지만, 접근성 면에서는 방아머리항 출발이 수도권 여행객에게 단연 유리합니다.
- 주차: 방아머리항 입구 오른쪽, 사전 결제 5,000원 / 3일 주차 가능
- 배편 예매: 대부해운 홈페이지 사전 예매 필수 (주말·공휴일 당일 발권 사실상 어려움)
- 소요 시간: 방아머리항 → 승봉도 약 80분 (차도선 대부아일랜드호)
- 주의: 선내 의자 없음, 돗자리 또는 개인 의자 지참 권장
- 출항 10분 전 승선 마감, 실제로는 정시보다 5분 일찍 출항하는 경우 있음
트레킹 코스, 9km가 전혀 길지 않은 이유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눈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서해 섬이라는 말을 들으면 탁하고 황토빛인 바다를 상상하기 쉬운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승봉도의 바다는 동해안 해변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맑았습니다. 특히 이일레해변은 만조 시에도 갯벌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자연 발생 해변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백사장이 넓어 여름 해수욕지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일레'라는 이름은 이틀에 한 번씩 올 만큼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일레해변을 지나면 소나무 숲길이 이어집니다. 키가 굉장히 큰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서 한낮에도 햇볕이 잘 들지 않습니다. 피톤치드(phytoncide)라는 말이 여기선 그냥 공기처럼 실감납니다. 실제로 숲길을 20분쯤 걸었을 뿐인데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숲길이 끝나면 해안 산책로가 시작됩니다. 이 구간이 승봉도 트레킹의 핵심입니다. 부두치해변을 지나 데크길에 들어서면 신황정 전망대로 이어지는데, 신황정이란 옛날 신씨와 황씨 두 어부가 풍랑을 피해 표착했던 장소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쉽게 말해 섬 탄생 설화의 무대입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승봉도 남동쪽 바다가 막힘 없이 펼쳐지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서해에서 이 정도 조망을 볼 수 있다는 게 처음엔 믿기지 않았습니다.
전망대 아래쪽 해안에는 삼형제바위와 촛대바위가 차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촛대바위는 두 어부가 풍랑 속에서 촛불처럼 빛나는 이 바위를 보고 섬을 찾아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입니다. 이름이 신왕돌이라 불렸던 승봉도의 탄생 설화와 맞닿아 있는 장소입니다.
트레킹 3분의 1 지점쯤 되는 곳에 '작은선창'이라는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마을을 벗어난 해안가에 있는 유일한 카페인데, 잔치국수와 해물파전, 막걸리까지 팔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들러 커피 한 잔 마셨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잠깐 앉아 숨을 고르는 시간이 트레킹 전체에서 가장 좋은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남대문바위 구간이 하이라이트입니다. 해안 절벽 아래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걸어가면 널찍한 부채바위가 먼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거대한 바위 중앙이 문처럼 뚫려 있는 남대문바위가 등장합니다. 서울 숭례문을 닮은 형태에서 붙은 이름인데, 바위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절벽 위 소나무가 어우러진 구도는 사진으로는 절반도 담기지 않습니다. 과거엔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장소였고 지금은 사랑이 이루어지길 비는 명소가 됐다고 하는데, 막상 그 앞에 서면 뭔가 하나 빌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승봉도 배편, 당일 현장 발권도 되나요?
A. 평일에는 현장 발권이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대부해운 홈페이지 사전 예매가 사실상 필수입니다. 제가 직접 가보니 주말 이른 아침부터 줄이 길었고, 배가 만석이 되면 다음 편을 기다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여객선은 당일 자리가 남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승봉도 주말 노선만큼은 그 공식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Q. 트레킹 코스가 힘든 편인가요? 운동을 잘 못해도 괜찮을까요?
A. 전체 9km, 약 4시간 코스이지만 급경사 구간이 거의 없어 트레킹 초보자도 충분히 완주할 수 있습니다. 신황정 전망대로 오르는 구간이 가장 경사가 있는 편인데, 그것도 5분 이내로 짧습니다. 제 경험상 4시간을 걷고 나서도 이상하게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간에 편의점이나 식당이 거의 없으니 간식과 물은 넉넉히 챙겨야 합니다.
Q. 승봉도에 숙박 시설이 있나요?
A. 있습니다. 주민 200여 명이 거주하는 작은 섬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펜션과 민박이 꽤 늘었습니다. 섬에서 1박을 하면 아침 일찍 해안을 걷거나 조개잡이 체험장을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어 당일치기보다 더 깊은 여행이 됩니다. 주말 성수기에는 숙박도 조기 마감되는 경우가 있으니 미리 예약하는 편이 좋습니다.
Q. 섬 안에서 이동할 때 교통수단이 있나요?
A. 일반적으로 작은 섬에도 마을버스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승봉도에는 공식 대중교통이 없습니다. 선착장에서 횟집이나 펜션에서 운영하는 사설 셔틀버스가 일부 보이기는 하지만 정해진 노선이나 시간표가 있는 건 아닙니다. 트레킹 코스를 걸을 계획이라면 처음부터 도보로 이동하는 일정을 잡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결론
서해 섬 여행은 갯벌이 전부라는 생각, 승봉도에 가면 단번에 바뀝니다. 맑은 바다, 소나무 숲길, 해안 절벽, 그리고 촛대바위와 남대문바위까지 한 섬 안에 이렇게 다양한 풍경이 압축돼 있을 줄은 저도 미처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대부도에서 80분이면 닿는 거리라는 접근성이 결정적입니다.
한 가지만 미리 챙기신다면 배편 예매입니다. 주말 아침 현장에서 표를 사려다 낭패 보는 분들을 꽤 봤습니다. 대부해운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매하고, 돗자리 하나 챙겨서 가시면 승봉도 여행의 절반은 이미 성공입니다. 남은 절반은 섬이 알아서 채워 줍니다.